운명도 피해가는 무리수 악녀
계획도 대책도 없는 파격적인 낙관주의자 타입
D · 생존확률 34%

당신의 이야기
당신은 원작의 존재조차 모른 채 남작가의 맏딸로 태어났습니다.
이곳이 소설 속 세계라는 힌트는 이상할 정도로 자주 나타났습니다. 수상할 만큼 익숙한 대사, 어디선가 본 듯한 인물들, 심지어 당신의 앞날을 암시하는 기묘한 사건까지 있었지만, 당신은 그때마다 멍하니 지나쳤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결국 원작자가 직접 나타났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손을 내저었습니다.
“쉿! 말하지 마요.”
“……네?”
“다 알고 가는 길은 하나도 즐겁지 않잖아요.”
원작자는 한참 동안 당신을 바라보다가 결국 체념한 듯 소설 밖으로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리고 시간은 흘렀습니다.
평온했던 어린 시절이 지나고, 어느덧 당신이 사교계에 데뷔할 날이 찾아왔습니다. 그날이 왔을 때에야 당신은 문득 오래전 원작자가 무도회에 대해 무언가 말하려 했던 것을 떠올렸습니다.
“……설마 그날이 파멸하는 날이었나?”
당신은 뒤늦게 원작자를 찾아보았지만 이미 늦었습니다.
당신은 머리를 감싸 쥔 채 고민했습니다. 도망칠까? 아니면 정면으로 부딪칠까? 혹은 아무 일도 없는 척 행동하면 운명이 알아서 지나갈까? ……뭐하지?
문제는 무도회 당일까지도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드레스만 몇 시간째 갈아입다가 시간이 다 되어버렸고, 그 순간, 완전히 패닉에 빠진 당신에게 기가막힌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당신은 옷장 구석에서 발견한 가장무도회 의상을 심각한 표정으로 집어 들었습니다. 그것은 하필이면 거대한 코끼리 분장이었습니다.
'그래, 이거야!'
당신은 확신에 찬 표정으로 코끼리 분장으로 갈아입었습니다.
그날 밤이었습니다. 황궁에서 열리는 성대한 무도회에는 사교계의 명사들이 전부 모여있었습니다. 외국에서 온 사절단과 신랑감 후보들까지. 가장 상석에는 황제와 황후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앉아있었지요.
그렇게 코끼리 귀와 긴 코를 달고 당신이 무도회장에 들어선 순간, 말할 필요도 없이 시선이 한꺼번에 당신에게 쏠렸습니다. 회장의 음악은 멈췄고, 영애들은 부채를 떨어트렸고, 하인들은 술을 쏟았고, 남자들은 웃음을 참느라 입술을 꽉 깨물었습니다.
'그래! 원작에서 절대 생각할 수 없는 어처구니 없는 짓을 하면, 분명 무언가 크게 바뀔거야! 이제 나에겐 이 방법 밖에는 없어!'
당신의 예감은 맞아떨어졌습니다. 당신은 무도회 내내 모두의 주목을 받았...아니,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신이 어디에 있든 파티장의 모든 눈이 당신을 따라다녔고, 이 날 당신을 납치해서 암살하려던 세력들은 감히 시도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당신의 번뜩이는 기지는 적중했고, 당신은 원작의 죽을 운명을 아슬아슬하게 피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날 당신의 코끼리 분장은 사교계의 최고의 화제가 되었습니다. 소문은 걷잡을 수 없이 퍼졌고, 당신은 파멸 대신 더 미묘한 결말을 맞이했습니다.
아무도 당신을 적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아무도 당신을 위협적인 인물로 생각하지도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뒤에서 당신을 '코끼리 영애'라고 불렀지만, 앞에서는 그저 측은한 눈빛으로 쳐다보곤 했습니다.
그렇게 당신은 죽지는 않았지만 죽은 것보다 더 심한... 사교계에서 완전히 존재감이 사라진 ‘투명인간’이 되었습니다.
조언
결정을 미루다 얼떨결에 상황에 휩쓸리는 패턴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완벽한 계획이 아니어도 좋으니, 최소한의 방향만이라도 미리 정해두는 습관을 들여보세요. 아무것도 정하지 않는 것보다는 작은 결정 하나라도 내리는 편이 낫습니다.